우붓에서의 온전한 하루는 여행 전반부보다는 조금 늦게 시작됐다. 중반을 넘어서자 조금씩 피로가 느껴져서일까. 7시쯤에 아침을 먹고 오늘은 Ubud 시내를 둘러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첫번째 목적지는 Campuhan Ridge Walk. 능선길을 따라 트랙킹하면 주변 경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여행자들의 평가가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늦어지면 더워질것 같아서 첫 목적지로 삼았다. 호텔셔틀이 내려준 시내중심인 왕궁에서부터 서쪽으로 10분정도 걸어가면 Ridge Walk 입구가 나온다. 가는 도중에 사진도 찍고 신발가게도 구경하고 쭉쭉 가다보니 꽤 온것같은데 생각했던 입구가 나오지 않고 언덕길이 계속된다. 9시반경이었지만 날씨가 습하고 많이 더워서 걷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상하다싶어 구글맵을 보니 입구를 한참 지나쳐서 쓸데없이 언덕길을 올라가며 힘들어 하고 있었던거다.
(길가다 잠시 사진만 찍은 곳. 왼쪽편으로 보이는 곳은 식당인 듯)
(아직은 힘차게 더위를 이기며 목적지를 향해 걷는 중)
(한참을 갔다가 좀전에 내려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올라가는 중. 이미 더위로 기진맥진)
뿔난 와이프에게 혼나면서 왔던길을 되돌아가 Ridge Walk의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기진맥진. 그래도 이거보러 왔으니 들어가본다. 조그만 들어가면 고색창연한 사원이 나온다. 발리의 정교한 조각들이 인상적인 사원이다. 안으로는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멋진 곳이다. 사원벽을 따라 언덕길을 좀 올라가니 서울의 하늘공원같은 곳이 나왔다. 날씨만 이렇게 무덥지 않았다면 괜찮은 트랙킹 코스가 될 것 같지만 너무 넙고 지친 우리는 조금만 올라가서 경치만 살펴보고 그대로 돌아나왔다. 뒤돌아보니 꽤 많은 관광객들이 이 길을 따라 올라오고 있다. 저마다 카메라, 핸드폰, 고프로, 심지어 마빅프로(드론) 을 가져와서 풍경을 담아가는 사람도 있다.
(Ridge Walk 입구에 있던 절. 벽을 따라 설치된 조각이 엄청 섬세하다)
(절의 일부인 조각)
(드디어 Ridge Walk. 이때는 아직 오전인데도 너무 더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은 않은 심정)
(대충 여기까지 분위기만 보고 돌아서 나옴. 다른 관광객들도 마찬가지. 이길을 쭉 따라서 트래킹하는 사람들도 있긴한데 이곳에 한달쯤 머문다면 몰라도 몇일만 있을 관광객에게는 좀 힘든 여정인 듯)
너무 지쳐서 오늘하루 나머지 관광이 제대로 될까 싶어서 이곳에서 그대로 택시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Monkey Forest로 이동하기로 했다. Ridge Walk을 막 빠져나오는데 한 현지인이 인사말을 건낸다.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하고 지가려는데 알고보니 로컬 택시기사다. 혹시 택시 필요하지 않냐고. 보통은 Taxi라고 쓰여진 하얀 종이를 들고 호객행위를 하는데 이 친구는 그냥 이웃주민처럼 접근해서 일단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워낙 지쳐있는 상태여서 6불에 Monkey Forest까지 간다는 것을 5불로 깍아서 가기로 했다. 사실 6불이라고 고집해도 무조건 택시를 타고싶은 상태였다. 이동하는 10여분 사이에 Rice Field나 Temple은 안가냐고 자기가 거기도 안내해 줄수 있다고 Cross Sales를 시작한다. 엮이면 당한다는 막연한 느낌에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친구가 동정심을 구하는 방향으로 세일즈가 들어온다. 낼모래가 발리 Festival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으로 치면 추석에 해당되는 큰 명절이었다.) 이라 명절준비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자기가 오늘 Rice Field 랑 Temple까지 가이드하고 퉁쳐서 반나절 투어비로 해준다고 한다. 과도하게 적극적인 세일즈로 들어오면 거부감이 먼저 드는데 동정심을 자극하니 일순간에 무장해제가 되버린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이것도 그 친구의 세일즈 전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전혀없는것은 아니지만 Temple이랑 Rice Field도 한번쯤 보고 싶기도 했기에 그렇게 하기고 하고 Monkey Forest 관람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비용은 모든일정이 끝나고 내면 된다고 하니 더욱 신뢰감도 들었다. 굉장히 힘들게 시작했던 오늘의 일정이 이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아주 편안한 여행으로 바뀌게 된다.
제대로 관광지로 만들어진 Monkey Forest를 한바퀴 돌며 동물원 철망에 갖혀있지 않고 지천으로 돌아다니며 관광객들에게서 먹을거리를 훔치기도 하고 반짝거리는 선글라스등을 뺏기도 하며 어쨋든 울타리가 없이 직접적으로 원숭이를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할 수 있었다. 때로는 사납게 변할 수 도있어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면서 한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그곳에서 한 원숭이가 어떤 여자 관광객에게 접근하더니 핸드백을 뺏으려 한다. 핸드백을 놓지않자 마침 열려있던 가방안에 있던 과자봉지를 잽싸게 훔쳐서 달아난다. 이래서 먹을것을 가지고 이곳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했던 모양이다.
이곳에서 다시 올때 협상을 마친 그 택시를 타고 Fountain Spring Temple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논밭사이 좁은 시골을 지나서 4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고색창연한 오래된 절은 그 안에 지하수가 올라오는 샘이 있고 그것을 사람들은 신령한 물이라고 생각하여 그 물을 몸에 묻치기도 하고 받아가서 집주변에 뿌리기도 한다고 한다. 주술사들이 악령을 쫓을 때 쓰는 신령한 물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싶다.
이때부터 그 택시기사가 가이드 역할을 자청하며 절에 같이 들어가면서 힌두교에 대한 설명, 이 절에 대한 안내, 여러가지 석상이나 건물들에 대해서도 안내를 해준다. 이곳 우붓에서 나고자란 토박이라 전문적인 지식은 아닌것 같지만 어릴적부터 듣고 자란 내용을 전해주는 그런 느낌이다.
절에서 돌아오는 길이 Tegalalang Rice Terrace를 통과하고 있어서 겸사겸사 계단식 논의 전경이 잘 보이는 현지식 식당으로 안내받아 현지식을 먹으며 계단식 논 구경도 했다. 원래 이곳도 유명관광포인트중의 하나인데 워낙 사전준비가 없이 왔던터라 크게 목적했던 곳은 아니지만 워낙 유명하고 한번 볼만은 한것 같다.
(발리 광광 포인트중 하나인 Tegalalang Rice Terrace. 능선을 따라서 식당과 뷰 포인트가 쭉 만들어져 있다. )
여기서 오늘의 일정이 다시한번 바뀌고 이 택시기사와의 인연이 더 깊어지는데, 원래는 내일 화산지역을 둘러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이 친구가 워낙 싹싹하게 잘 해줘서 내일 화산지역을 갈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내일은 Festival 준비를 해야해서 힘들고 오늘 오후에 가면 어떻겠냐고 한다. 그래서 원래계획을 변경해서 식사후에 바로 Batur 화산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반나절투어가 종일투어로 Up Sales 되는 순간이다. 이 친구의 수완이 좋은건지 우리가 운이 좋은건지 하여튼 예상치 않은 화산지역 투어가 이렇게 시작됐다. 토탈해서 종일투어로 AU$60불을 불렀는데 우리가 사전에 알고 있던 가격보다 비싸지 않은것 같아서 깎지않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가끔씩 동남아나 물가가 싼 지역에 와서 현지인과 거래하면서 1~2불 더 깍아서 최대치까지 네고하는것이 올바른 동남아 관광의 방식이라는 통념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굳이 그렇게하는 것이 즐기러 온 우리에게 맞는 것인지, 또 힘겹게 살아가는 현지인들에게도 옳은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마치 대기업이 중소기업 쥐어짜서 수익남기는 것 같은 느낌) 바가지만 쓰지 않는 정도라면 기분좋게 딜하고 기분좋게 서비스 받는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를 한 Tegalalang Rice Terrace에서 약 50분 북쪽으로 달려서 도착한 곳이 Batur 화산이 보이는 전망대. 산의 일부는 땅이 검게 덮여있었는데 7~8년전에 분화가 있었고 그때 흘러내린 마그마와 분출물들이 뒤덮여서 땅이 겁게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분화한지 10년도 채 안된 살아있는 화산이다. Batur화산 우측으로는 같은 이름의 Batur 호수가 있고 더 우측멀리에는 최근에 곧 분화할 것이라며 전세계 화제의 뉴스가 되었던 Agung화산이 구름에 가려서 그림자만 보이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서 본 모습은 모이지 않았지만 그 규모를 대충을 가늠할 수 있었다. 저게 제대로 분화했다면 엄청난 규모였으리라 싶다. 다행히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기 일주일전쯤 화산상태가 분화직전 단계에서 안정단계로 돌아섰고 대피했던 인근 주민들도 다시 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사실 오늘아침 호텔에서 지진을 느꼈다. 침대가 가로방향으로 흔들려서 이게 뭐지 싶었는데 곧 이게 지진이구나하고 깨달았다. 심하게 흔들리진 않았지만 매우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정도의 흔들림이었다.
(업데이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아궁화산이 실제 분화했고 발리공항이 폐쇄됐다. 관련뉴스 )
이곳 전망대에서 보는 전체적인 스케일은 시드니 블루마운튼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느 정도의 광활한 느낌이 있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Bali를 처음 온다면 꼭 한번은 볼만한 광경이다. 투어중에 새벽에 나서서 Batur 화산 트랙킹을 하고 해뜨는 걸 보고 내려오는 것이 있다고 회사 동료가 출발전 이야기 해줘서 굉장히 감동스런 경험이 될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이를 핑계로 그런 하드한 투어는 안하는 것으로. 젊은 관광객들에게는 잊지못할 투어가 될 것 같다.
Batur화산 구경을 마치고 Ubud 시내로 돌아와서 예정했던 비용을 지급하고 일정을 마칠 예정이었는데 우리가 쿨하게 전일광광 딜을 해줘서 그랬는지 이 택시기사가 오늘 돈을 벌 수 있게 Job을 줘서 너무 고맙다며 나이스하게 대해줘서 자기도 정말 좋은 서비스를 해주고 싶다며 좋은 마사지 샵을 추천해줄테니 꼭 마사지를 받으라고 한다. 마사지 끝나면 Ubud에서 꼭 먹어봐야 되는 음식중 하나인 Crispy Duck을 잘하는 집이 있다고 데려다 주고 식사가 끝나면 다시 시내든 호텔이든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하면 시간이 늦어져서 굳이 안그래도 된다고 그냥 시티에 내려주면 우리가 알아서 저녁먹겠다고 퇴근하라 해도 자기는 오늘 기분이 너무 좋다고 끝까지 가이드해줄테니 맘껏 즐기라고 한다.
(얼떨결에 가게된 마사지 샵. 세미냑에서 받은 곳보다 훨씬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졌음. 역시 잘한다고 알려진 곳을 골라서 와야하는 이유가 다 있는 듯.)
이 친구 덕분에 조금 힘들게 시작했던 오늘하루가 정말 기분좋게 마무리 되는 것 같다. 안내해준 Putri Bali 마사지 샵에 가보니 손님들이 예약까지 하고 와서 대기하고 있다. 나름 유명한 곳인가 보다. 다른 한국 관광객 분들도 보이고. 우리는 예약없이 와서 가볍게 한시간 발마사지만 하고 나왔다. 아마도 전신마사지를 하려고 했으면 예약이 필수였으리라 생각된다.
저녁으로 먹은 Crispy Duck은 꽤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Bebek Tepi Sawah라는 현시식 식당인데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크지않은 작은 오리를 바싹하게 튀겨서 껍질까지 고소하게 먹을 수 있었다. Ubud의 대표적인 전통요리중 하나인가보다. 예전에 우라나라 대통령도 발리 방문했을때 먹고갔다고 함.
마지막으로 Ubud에서 맛있는 커피집이 많다하여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한 Seniman을 찻았다. 커피맛고 좋았고 분위기도 좋고 이곳에 있는동안 자주 찾을 만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커피가격이 시드니랑 동일한 수준이라 이곳 기준으로는 고가에 속한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운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