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라면 모두 공감하는(아니다, 윤모씨 등는 군대를 안가서 모르겠구나) 군대의 부조리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신작 DP가 화제다. 얼마전 방송했던 ‘강철부대’가 한국의 멋진 특수부대간 경쟁을 오락적 시각에서 만든 리얼리티쇼라면 DP는 현실보다 더 사실적인 드라마다.
헌병대에서 근무했던 관계로 이 작품에 관심이 있어 작품오픈 첫날에 6편을 한번에 끝까지 봤다. 거의 모든 장면이 익숙한 것들이었고 너무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었다. 내가 91년도에 입대했는데 2014년이 배경이라는 이 드라마는 91년도와 바뀐게 거의 없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바뀐게 없다. 굳이 다른걸 찾으라면 우리때는 IP추적은 없었고 모뎀으로 겨우 PC통신을 하던 시기라는 정도.
작품을 보고나니 예전 생각이 계속나서 생각난김에 드라마와 비교해서 내 기억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나는 당시 속보병 보직으로 속보(헌병대 사고접수시 8시간내에 초동수사관의 보고서를 1페이지의 요약보고서로 작성해서 헌병최고 책임자에게까지 보고하는 체계)를 작성하고 타 헌병대에서 작성된 사고사례를 전파하는 업무, 그리고 수사과내 일반업무를 담당했음. 드라마에서 안경쓰고 IP추적하던 병사라고 보면 됨. 속보병은 24시간 커버를 위해서 밤에도 1명이 대기근무를 하는데 낮에는 자고 저녁식사 시간에 눈떠서 저녁먹고 근무 시작해서 아침이 까지 밤새 일어난 사건사고 보고 마무리하고 아침 먹고 자러가는 형태임. 그래서 26개월 복무기간중 14개월을 밤에 일하는 행운(?)을 얻었음. 밤에 일하면 내부반과 시간이 안겹쳐서 내무생활의 스트레스가 적고 사건사고가 없는 날은 밤에도 적당히 책상에 엎드려 수면을 취할 수도 있고 남는 시간에 친해진 타부대 속보병들과 전화나 채팅으로 수다를 떨기도 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음.
아래는 드라마 DP과 비교한 개인적인 경험담.
주의: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음.
헌병대장
내용중에 헌병대장에 한밤에 부대원들 시켜서 조경한다고 나무를 옮겨심는 삽질을 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부대의 경우엔 군단장이 바뀌면서 헬기장 잔디를 다 뽑아서 무늬 배열을 바꿨던 기억이 있다. 비효율과 전시행정의 대표적 사례
실력있는 수사관의 진급누락
실적도 좋고 실력도 있지만 곧은 성격탓에 진급이 안되는 드라마 속의 박범구 중사. 내가 2년이상 모셨던 수사과장님은 처음부터 수사과에서만 근무해서 정말 베테랑이고 인품도 좋았지만 윗사람에게 아부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진급이 번번히 안되었다. 너무 진급이 안되서 이라크 파병지원할까 고민하셨던 기억이 있다. 반면 수사과 경험도 부족하고 날라리였던 수사계장은 진급시기가 다가오자 휴가내고 진급심사자 명단과 돈가방을 들고 서울로 올라갔다 왔다는 소문과 함께 바로 진급에 성공하고 새차를 뽑았다.
헌병대 내부 폭행
군대내의 가혹행위 근절이 내가 근무하던 당시에 매주 중요한 중점사항이었지만 정작 헌병대 사병들은 화려한 근무복을 벗겨보면 여기저기 멍자욱이 있었다.
더 나쁜 사례는 고참들에게 심하게 당한 일병들이 영창근무를 서면서 영창에 들어와 있는 다른 군인들에게 그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것. 그래서 영창 들어가면 갇혀있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영창근무하는 헌병에게 엄청나게 괴롭힘을 당하기때문에 절대 영창에는 들어가면 안됨.
영창
영창 이야기가 나온김에, 한번은 잡범으로 잡혀와서 재판날짜가 안잡힌 관계로 수개월을 계속 영창생활을 하고 있던 병사가 있었는데, 그 시기에 조폭 똘마니 방위가 퇴근후 술먹고 싸움나서 폭행으로 잡혀들어온 적이 있었다. 조폭 두목이 무슨 신묘한 힘(돈?)을 썼는지 3일만인가 약식재판받고 집행유예 비슷하게 영창을 나갔던 기억이 난다. 잡범으로 들어온 그 병사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재판날짜가 잡히길 기다리며 영창생활을 했다. 역시 유전무죄 무전유죄.
작은 개인적인 에피소드로 그 조폭 똘마니 잡혀온날 근무병이 부족해 수사과에 있던 내가 조사실에 있던 그를 한동안 혼자 감시하게 됐는데 무서운 티 안내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영화보면 어리버리한 감시병을 때려눕히고 탈출하는 범죄자를 많이 보게 되는데 딱 그 상황. 물론 별일은 없었지만.
내무반 생활
이병때 우리소대에도 후임병을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병장들이 있었음. 다행이 당시 중간에 낀 일병들이 너무 잘 챙겨주고 커버해줘서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내무생활을 했던것 같음. 예를들면 보일러실에 집합이 있을때도 나를 속보실에 남겨두는 등.
드라마에선 조석봉 일병이 엄청 터지고 난후 ‘우리는 나중에 때리자 말자’고 했다가 나중에 자신의 후임들에게 똑같은 폭행을 저지르는데 실제 우리부대 일병들은 맞으면서 병장을 달았지만 고참이 된 후로는 부대내 구타는 없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일병중에 두어명 또라이가 있었다면 내 군생활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
기수/비기수
헌병들은 기본군사훈련후에 헌병이 되기위해 후반기 교육을 추가로 받는데 이게 엄청 빡세다고 함. 그래서 해병대 기수 챙기듯 헌병들도 몇기인지를 많이 챙김. 근데 헌병대에도 행정학교를 나오지 않은 나같은 병사들이 있음. 예를들면 나는 타자속도가 빠르다는 이유로 속보병이 됐고, 지원과 행정병도 비슷하게 데려왔고, 같이 근무하는 헌병대 방위들도 다 그냥 보통 방위. 이게 계급과 별계로 행정학교 출신들은 양반이 되고, 비기수(행정학교 안나온 병사)는 평민이고, 방위는 노비같은 존재가 됨. 자대배치 첫날에 교육받은게 방위는 계급무시하고 말까라는 것. 비수들 같은 경우는 타부대는 계급 무시하고 말까라고 시키고. 그래서 말까면 뒤에서 지켜보는 고참들 흐뭇해하고 그것 못하면 돌아와서 고참에게 까이고.
목침
드라마에선 나오지 않는건데 군기잡는다고 때릴때 마구잡이로 때리는 게 아니라 목침이라고 목을 때리면 멍이 안으로 들어서 구타의 흔적은 없지만 맞을땐 아프고 몇일간 말하기 힘듬. 이병때 수사과 군기잡는다고 담당 신임하사께서 직접 목침을 하사하심.
구속영장
또다른 개인적인 에피소드로 한번은 구속영장들고 자판기 커피뽑으러 갔다가 커피자판기위에 구속영장을 올려놓고 깜박하고 커피만 들고 왔다가 한참후에 구속영장 없어졌다고 엄청 혼났던 기억이 있음.
사건사고
근무중 기억나는 큰 사건중 하나는 모 헌병대 영창에서 몇명이 탈옥했는데 그중 특히 2명은 신출귀몰하게 꽤 오랫동안 도망다녔다. 영창 탈옥은 헌병대의 자존심 문제라 전력을 다해서 잡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꽤 싸움을 잘하는 부산 탈영병이 나오는데 내가 있던 시절에 탈옥했던 병사중 한명도 몸이 날라다녔다는 당시 수사관들은 전언이 있었고 산으로 도망간 한녀석을 잡겠다고 근처 특공부대가 출통해서 산전체를 싹 훑기도 했지만 탈영병은 그후로도 꽤 오랫동안 도주했었다.
또 다른 한 사건은 강원도 철원에서 무장탈영병이 서울까지 진입하며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져 그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행했던 사건. 마지막에 경찰과 대치중에 수방사 헌병대 저격으로 종결된 사건. 아래 영상은 당시 TV뉴스 보도.
마지막으로 코스모스 피는 계절이라고 찍었던 기념사진 한장.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때 그분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