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와 우파, 극우 유튜버 그리고 민주주의의 경계

한국에서 민주당은 흔희 좌파진영이라고 하고 국민의 힘은 우파진영이라고 한다. 미국에도 민주당(좌파)과 공화당(우파)로 나뉜다. 호주에도 노동당(좌파)와 자유당(우파)로 크게 나눠진다. 공산국가나 독재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는 정치세력이 좌파와 우파로 나뉜다. 

좌파와 우파가 뭔가. 대체로 이 둘을 나누는 것은 기본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적인 차이에 뿌리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좌파는 못사는 사람에게 더 많이 나눠주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복지정책에 관심이 많다.  우파는 능력있는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재감세, 대기업감세에 관심이 많다. 

이처럼 아주 기본적인 세계관에서부터 시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의 간격을 좁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SNS를 필두로 한 뉴미디어시디에 들어와서 유튜브등의 알고리즘 때문에 좌파는 좌파미디어(매불쑈, 나꼼수)만 시청하고, 우파는 우파미디어(신의한수, 신남성연대)만 시청하며 서로의 간격은 점점 더 멀어진다. 

기존매체중에서도 MBC, JTBC는 좌파에 가깝고, KBS, YTN은 우파에 가깝다. 그외 대다수 종편은 거의 우파진영이다. 

그런데 최근 탄핵이후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기존미디어는 최다 좌파이고 소수의 유투버들만이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거리에서 KSB기자가 그런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좀 당황스러웠는데 생각해보면 극우파가 우파를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전두환 군부 독재시절에 언론통제 때문에 기존 미디어에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던 5.18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대학생들이 허접한 등사기를 밀어서 전단을 만들고 책자를 만들어 당시의 잔혹함을 알리려고 했던 것마냥 최근의 극우 유투버들은 자신들만이 마치 진실을 알려주는 사람인양 행세하고 있다. 인터넷 세상이지만 진실을 알기는 여전히 어렵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었거나 누군가 알려주는 이야기를 스스로 검증해볼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확대 재생산되는 극우유튜버의 자극적인 이야기에 쉽게 빠질 수 있다. 

많이 배운사람들이 유사종교에 깊히 빠지는 것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데 마찬가지로 많이 배운사람들이 자극적인 유튜브 컨텐츠에 세뇌당하는 것이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한가지 설명이 가능한 것은 괴벨스의 전략이 먹인게 아닌가 하는 것 뿐이다. 거짓 정보라도 지속적으로 누출되면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히틀러의 선동전략이다. 

최근 학원강사 출신의 전모 강사가 극우유튜버이자 투사로 등극했다. 짧은 시간에 구독자가 급등했다. 격정적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그의 컨텐츠가 인기급상승중이다. 사회현상에 관심을 막 기울이기 시작한 청년들이 혹하기 좋은 주장들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전모 강사의 유튜브를 보고 느낀점이 인기강사라고 해서 깊이있는 내용을 다룰줄 알았는데 그냥 우파유튜버들이 거리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을 격정적으로 되풀이 하는 것이 다였다. 근거도 없고 데이터로 없고 그냥 샤우팅이다. 그리고 그 주장중 일부는 현행법을 무시해도 되고, 폭력을 써도 괜찮다는 수준의 것도 있다. 본인은 왜 자신이 극우유튜버라고 불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좌파와 우파가 총칼없이 함께 서로의 주장을 펼치며 같이 사는 곳이 민주주의 국가이다. 누구라도 법을 무시하고 폭력을 이용해서 자신과 뜻이 다른 그룹을 제압하려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래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정적을 제거하려 했다면 내란죄로 엄히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리에서 누군가를 폭행하거나 법원에 침입해서 폭동을 일으키면 엄히 처벌받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최소한의 넘지 말아야하는 것이 폭력을 쓰는 것이다. 나라에는 법과 제도가 있다. 답답하고 법꾸라지에 지겹더라도 법과 절차에 따라서 일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 선을 넘는 주장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극우파라 부른다. 물론 좌파진영의 누군가가 법을 무시해도 된다고, 폭력을 써도 된다고 주장한다는 그는 극좌파다. 

최소한의 상식은 우파나 좌파가 되더라도 민주주의가 정해놓은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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