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퍼스에서 급성 맹장염 / 충수염 수술 받기

한해를 마감하는 12월 31일 점심부터 설사가 시작되고 속이 조금 불편해짐. 워낙 설사가 잦은 편이라 어제 뭘 잘못 먹은건가 고민만 했는데 저녁먹고 3번째인가 4번째 화장실을 갔다온 후에 저녁 8시 쯤부터 웟배(위)가 쓰리기 시작. 보통같으면 설사후 모든게 리셋되고 속이 편해져야 되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설사를 몇번하고 났는데 오히려 위장이 쓰리기 시작했음. 저녁식사전에 비타민등을 빈속에 먹었는데 그것때문인가 생각하며 부스코판 한알먹고 일찍 자리에 누웠음.

 

저녁 10시경부터 약효도 없고 배가 계속 쓰리는데 이상한게 오른쪽 아랫배 구석부분이 살짝 아픈데 눌러보면 더 많이 아프기 시작. 이상하다 하면서 잠을 청했지만 밤이 깊어가도 복통 때문에 잠을 잘수가 없고 오른쪽 아랫배 통증이 점점더 명료해지는 느낌. 이때부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서 맹장염 증상에 대한 검색시작. 그리고 관련된 영어 표현도 검색해봄. (병원가면 써야되니까)

 

새벽 2시반쯤 와이프가 잠에서 깨서 배 아픈것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맹장이 의심된다고 이야기하고 응급실로 가자고 합의 봄. 통증에 잠을 못잘정도였지만 떼굴떼굴 구를 정도는 아니라서 어쩌면 아침까지 계속 참았을 수도 있는데 정말 혹시나 맹장염이면 빠른 수술이 매우 중요하다는걸 알고 있어서 응급실 가는걸로 결정. 이때 와이프가 잠에서 깨서 안물어 봤으면 어쩌면 계속 아픈배를 붙잡고 인터넷만 검색하다 병을 키웠을 수도. 개인적으로 왠만하면 진통제를 먹지 않는데 이날도 괜히 진통제 먹고 많이 안아프다고 잠 적당히 자고 아침에 일어났으면 상태가 더 악화됐을 수도. 

 

하필 오늘이 1월 1일이라 000전화하면 구급차가 제시간에 올까하는 걱정때문에 그냥 운전해서 가기로함. 와이프는 지난 몇일간 불면증으로 매우 힘든 상태여서 내가 운전했는데 엑셀밟을때 배가 아파서 약간씩 몸을 비틀면서 운전해감. 

 

퍼스 북쪽에서 가까운 응급실이 준달럽병원과 시티에 있는 로열퍼스병원이 있는데 로열퍼스병원은 이미지상 퍼스에서 가장 오래된 병원이라 조금 더 믿음직했지만 연말이라 시내에서 사고치고 들어오는 애들때문에 응급실 혼잡할것 같아서 준달럽으로 결정. 왠지 퍼스 외곽의 병원이라 의사수준도 환자수준도 약간 걱정했었는데 결과적으로 매우 잘한 결정이었음.

 

응급실에 도착하니 새벽 2시반. 다행이 대기자가 3명정도 밖에 없음. 접수표 뽑는 기계는 고장나서 그냥 바로 놀고 있던 접수원에게 왜 온건지 설명하고 기본 인적사항과 매디케어번호 알려주고 야구장에서 볼 수 있을법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대기. 잠시 대기후 간호사와 다시 어디가 않좋은건지 그리고 이름과 연락처, 보호자의 인적사항을 알려주고 다시 대기. 의자가 불편해서인지 식은땀이나고 머리를 들고 있는것 자체가 힘들어 의자 3개에 노숙자처럼 웅크리고 누웠음. 고맙게도 주변에 있던 청소하시던 동양계 아저씨가 덮을 것을 갖다주셨음. 병원 올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에는 참 고맙고 친절한 분들이 많다는 걸 느낌.

 

가끔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갔다가 사람이 많아서 몇시간이나 기다리다 겨우 진통제하나 받아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나는 약 30분만에 응급실 침대로 들어갈 수 있었음. 예전에 입원 경험이 있어서 혹시나 몰라 핸드폰 충전기, 속옷 2벌, 칫솔까지 잘 챙겨서 왔다. 역시 경험자의 현명한 선택.

 

 

일단 피뽑아 염증반응 테스트하고 기본적인 체온, 혈압, ECG 테스트 다하고 추가 테스트 대기하는데 아마도 맹장염인것 같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수술하게 될거라고. 얼마후 간호사가 가져다 준 좀 쎄보이는 진통제 4알을 먹고 한시간쯤 지나니 서서히 통증이 좀 진정되는 느낌. 처음으로 병원와서 뭔가 도움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음. 

 

무슨 사연인지 커텐넘어 옆 베드에서는 술취한 젊은 여자가 큰소리로 땡깡 부리다가 울다가 난리 부르스를 치고있고. 역시 응급실은 이런 분위기가 어울려. 몸에 달아논 심박수 등등 체크하는 기계는 일정 이상수치로 변경될때마다 요상한 알람 소리가 밤새 응급실에 울리는데 이게 은근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같이왔던 와이프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복부 CT촬영 진행. 기계가 반짝거려서 새거냐고 물어보니 들어온지 얼마안된 신상이라고 함. 예전에 시드니의 전통깊은 Royal North Shore병원에서 오래된 기계로 CT찍을때 30분정도 소요됐었는데 이 새 기계는 몸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3번하니 끝. 우왕, 컴퓨터랑 의료기기는 신상이 짱. 몸이 불편한 환자에게 길고 불편한 검사는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드는 데 준달럽병원의 CT촬영은 거의 감동적이었음. 기계에 누웠다 나오는데까지 얼추 5분쯤 걸린듯. 촬영기사 말로는 찍는건 금방인데 결과나오는데는 한시간쯤 걸린다고. 

 

얼마후 Dr Yong이라는 젊고 자신감 넘쳐보이는 동양계 수술의사가 와서 맹장염이고 복강경(Key Hole) 수술로 맹장을 제거할건데 낮은 확율로 맹장이 터지고 염증이 번져있으면 개복수술할수도 있다고 알려주고 동의서에 사인 받아감. 가능성은 낮지만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많은 동양인 의사가 그렇듯 매우 사무적인 눈빛과 말투가 친근하진 않았지만 수술은 잘할것 같았음. 응급수술이라 수술은 오늘할거라 함.

 

이제 저녁 이후로 식사를 안했기 때문에 수술전 금식조건은 맞춰진 듯. 응급실에 왔을때부터 입이 바짝바짝 말라서 컵에 물을 받아놓고 조금씩 목을 축이고 있었는데 새벽에 새로온 간호사가 그걸 발견하고는 정색한 얼굴로 금식중에는 아무것도 먹으면 안된다며 물이든 컵을 뺏어감. 음식도 아니고 살짝 목을 축이는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였나? 이후로도 병원에 1박2일 있는동안 약 10명은 간호사가 계속 바뀌었는데 수술병동의 간호사는 물먹은거 말했더니 그정도는 괜찮다고. 역시 물어보는 사람마다 대답은 다 달라. 그래서 아프면 의사/간호사 말만 믿을 수 가 없고 인터넷 검색을 병행해야함. 

 

얼마후 수술실 간호사라고 찾아와서 오늘 수술할거라고 알려주며 기본적인 질문과 함께 배 몇번 눌러보고 감. 이분도 동양인. 웃는 인상과  친근한 말투라 심리적으로 의지가 됨. 예전 시드니에서 관상동맥촬영할때 담당 대학교수 의사분은 약간 인체해부를 즐길것 같은 사차원의 인상이라 좀 무서웠었음. 

 

이때부터는 혈전응고 방지주사 아랫배에 한방 맞고, 4시간짜리 수액은 벌써 끝나가고, 수술 대비용 항생제 수액관으로 30분인가 걸려서 맞고 하면서 수술 대기중. 다리에는 혈전생성 방지용 압박 스타킹 신겨줌. 수술후 계속 오래 누워있는동안 정맥에 혈전에 생겨서 그게 머리로 올라가면 뇌경색이 된다고 함.  간호사가 갑자기 장단지 둘레를 재고는 ‘어머 되게 작네’하길래 뭐하나 했더니. 다리 사이즈에 맞는 스타킹을 위한 것이었음.

 

예전에 입원했을때 제일 힘든일이 기다리는 일이어서 이번에는 심리적으로 그부분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노력함. 간호사가 바로 Theater로 갈수도 있고 Ward로 갈수도 있다고 함. 극장이라니 뭔소린가 했지만 문맥상 수술실이라고 이해했고 수술실치고는 이름을 잘 지었다고 생각했음. 나중에 올라가서보니 수술대기실 전광판에 Theater라는 이름이 반짝이고 있었음. 

 

8시쯤이었나? 아침 식사 준다고 몇 자리에는 식사 주고 차도 주는데 나는 금식해야해서 수액으로 버티며 대기중. 얼마후에 Ward에 자리가 나서 올라갈거라고 함. 젊은 청년이 와서 병상을 한층위에 있는 내과병동으로 옮겨줌. K-pop을 좋아하고 한국 여자들은 잘 꾸미고 다닌다고 느낀다며 MZ세대 느낌 물씬나는 나이트에서 인기 좋을것 같은 훤칠한 청년이 침상을 올겨주고 베개랑, 이불도 챙겨줌. 사실 옮겨만 주고나면 이곳 간호사가 나머지를 챙기는게 맞지만 한국문화 이야기하는 사이에 조금은 친해진건지 이것저것 챙겨주고감.

 

이동한 곳은 L1 병동. 내장관련 수슬 대기 및 회복하는 환자들이 머무는 곳이라함. 놀랍게도 1인실에 큰 창이 있는 병실. 부잣집 막내아들도 아닌 내가 1인실에 머물다니. 올해는 운이 좋으려나. 물어보니 코비드 이후로 병실은 가능하면 1인실로 만들고 있고 각 방별 환기시스템을 개별적으로 만들어서 코비드에 안전하게 만들었다고 함. 그래서인지 병실에 들어오자 바로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함. 그리고 병실에 설치된 TV로 오랜만에 호주 방송도 좀 봤다. 시드니에서 입원했을때는 TV랑 신문은 별도 비용을 내는 사람들에게만 보여줬었는데 이곳에서는 신문은 없지만 TV는 공짜 게다가 1인실이니 그냥 내가보고 싶은것 맘것 보면되고. 어찌보면 비용적으로는 작은 부분일수 있는데 환자에게는 안그래도 힘든데 이런 사소한 것까지 돈으로 차별한다면 좀 서글픈일이다.  

 

간호사가 자주 묻는 질문중에 when is the last time you open bowel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뭔소리인가 몰랐는데 알고보니 언제 마지막을 변을 봤나요하는 질문이었음. 응급실에 있을때도 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잘 못알아듣고 I never opened my bowel이라고 했는데 간호사가 그냥 넘어가길래 잘 대답한줄 알았더니 그 간호사가 너무 바빠서 내가 잘못 알아들은걸 무시하고 차트에 대충 기재을 했나봄. 그외에도 수술후에 Did you pass gas? 비슷한 질문이 있었는데 방귀가 나왔는지 물어보는 거로 이해하고 Yes 대답함. 

 

응급병동에서 미처못한 소변검사를 마지막으로 수술준비 완료. 또하나 정말 다행이라고 느낀것은 특별한 알러지가 없고, 여러 검사에서 적어도 수술할 정도의 건강상태가 되어있다는 점. 검사중 생각지도 못한 또다른 문제점이 나올까봐 조금 걱정했는데 그런게 없어서 다행임. 

 

이제부터는 수술할때까지 기약없는 대기. 12시가 다돼서 수술실로 올라가자고 함. 올라가보니 그곳이 Theater. 

 

수술침대로 옮겨눕고 나니 데워진 따듯한 담요를 덮어줌. 시드니에서 관상동맥촬영할때는 스탠으로 된 침대에 누웠었는데 그때는 정말 해부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적어도 이번 수술 침대는 소프트한 제질이라 마음이 조금 더 편안했음. 응급실에서 봤던 수술간호사가 ‘드디어 왔네요’인사를 나누고 인도계로 보이는 마취의사가 와서 마취관련 간단한 안내를 해주며 어디 출신이냐고 묻더니 내가 한국인이라 하니 ‘대~한민국, 👏👏~👏👏👏’하는 응원소리를 알고 있다며 친근감을 표해준다. 예전같으면 한국이라고 하면 첫 반응이 북한이야기 정도였는데, 요즘엔 K-pop, K-drama 등등 많이 좋아졌다. 어딜가나 어느정도 환영받는 느낌. 

 

병원에 있는 동안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 짧은 순간만남이지만 이런 저런 사소한 이야기로 긴장감을 풀수 있어서 좋았던것 같다.

 

수술침대로 옮겨진후에도 20분정도 대기했고 화장실도 마지막으로 한번더 갔다왔다. 1시 15분쯤 수술실로 옮겨저서 마취가 시작되었고 드라마에서 처럼 가스를 마시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기억이 없다.

 

 

마취에서 깨어난건 얼추 3시가 다되서 였는데 눈떠보니 앞니하나가 세게 눌렸었는지 엄청 아프고 근처 윗입술이 터져있다. 기관지도 꽤 따끔거리는데 산소관을 넣었다 빼면서 그랬나보다. 수술실 들어가면서 와이프에게 전화를 못해서 서둘러 간호사가 보관해주었던 핸드폰을 받아서 수술 잘 끝났다고 전화부터하고 한국 집에도 카톡으로 연락드렸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잠이 계속 쏟아져서 수술후 특별식이라고 나와있던 샌드위치는 열어볼 정신도 없이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 저녁식사때가 다되서 코에 거는 산소관을 빼고 처음으로 소변보러 화장실을 갔다왔다.  처음 일어났을때 배도 아프지만 너무 어지러워 살짝 쓰러질뻔. 마취후 처음 움직일때는 조금씩 움직여야 되나보다. 옆에서 간호사가 ‘천천히 움직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점심때 나온 샌드위치와 오랜지쥬스랑 사과는 손도 못댔는데 차나 커피를 원하냐고해서 따듯한 차를 한잔 받아서 입만 축였다, 한국에서는 수술후 식사는 방귀를 뀌고나서 해야하고 그것도 보통 죽으로 시작하고 일반 식사는 몇일 후에나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수술후 특별식이 샌드위치라니 서양문화가 이렇게 다른건지 서양사람들 위장이 우리랑 다른건지.

 

 

저녁식사로는 작은 빵, 카레라이스, 사과쥬스, 푸딩,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수술환자에게 아이스크림이라니. 다 맛있었지만 배에 가스가 가득차있고 소화력도 자신이 없어 밥은 80%정도 나머지는 한입씩 맛만 봤다. 병실입구에 보니 분명히 특별식이라는 라벨이 붙어있었는데 카레라이스에 아이스크림이라니. 그리고 내일부터는 그마저도 일반식으로 바뀌었다. 솔직히 무슨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차나 커피는 식사직후에 한번 식간에 한번씩 나왔다. 그 사이나 밤에라도 출출하면 따로 부탁할 수도 있는것 같았다. 밤 쉬프트인 인도계 간호사가 와서 밤에 혈압재면서 출출하면 샌드위치라도 줄까 하고 물어보기도했다. Blood clog 를 예방해주는 주사를 허벅지에 맞았고, 항생재 주사를 반나절마다 맞았다.

 

1인실이라 조용하기도 했고 환자복이라 평소보다 엄청 얇게 입고 있었지만 담요 2개 덮고 자니 수술후 첫날은 편안하게 잔것 같다. 물론 간호사가 4시간마다 깨워서 혈압을 재긴 했지만.

 

이렇게 엄청 길고 요란했던 2023년 1월 1일이 저물었다. 

 

수술 다음날

 

진통제 덕분인지 배 구멍난 자리등이 아프기는 하지만 아주 불편하지는 않았다. 간호사가 중간중간 (아마도 4시간마다) 진통제를 줄까하고 물어봤을때 많아 안아파서 꼭 안먹어도 될것 같았지만 간호사가 ‘Are you sure’ 하고 되물으니 나는 금방 꼬리를 내리고 진통제를 받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지금 안아픈게 진통제빨인 걸수도 있으니까. 

 

 

아침식사로는 Weet-Bix라고 곡물 뭉쳐논 아침대용 간편식, 저장방 우유, 과일 샐러드, 사과쥬스, 토스트가 나왔다.

 

가볍게 움직일 수 있게 되어 바지도 주워입고, 병실을 나가 병동을 둘러보며 산책도 했다. 수술후에는 무리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자주 걷는 것이 좋다하여 많이 걸으려고 노력했다.

 

9시쯤인가 어제 수술했던 간호사가 2명을 옆에 데리고 다니며 회진을 들어왔다. 의사가 직접오지 않은건 의외였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간호사 말로는 염증이 심했었다며 다행이 터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터졌더라면 개복수술로 전환되어 수술도 복잡해질 뿐 아니라고 입원도 오래해야하고 회복도 그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염증도가 심했기 때문에 오후 1시에 항상제 주사 한대 더 맞고나면 바로 퇴원할 수 있다고 한다. 퇴원하면 5일간 페니실린 항생재 약을 먹어야 한다. 매우 강한 진통제도 처방해 주었는데 먹을일이 없으면 좋겠다.

 

 

12시반쯤 와이프가 퇴원시간에 맞춰 와주었고, 주사를 다 맞고, 이미 나와 있던 점심까지 먹고 퇴원했다.

 

어제 밤에 야간 근무 간호사에게 Medical Certificate을 부탁했더니 아침 회진도는 의사에게 이야기하면 된다고 했는데 회진때 수술간호사가 너무 짧게 머물러서 미처 말하지 못했는데 아침에 근무하는 간호사에게 부탁하니 2주간 일에 적합하지 않다는 Certificate을 발급해 주었다.

 

퇴원서류에 사인하고 처방전 설명듣고, 배에 붙여논 글루는 자동으로 사라지니 후속조치가 필요없다는 안내와 함께 샤워는 바로해도 된다는 믿기지 않는 안내를 마지막으로 퇴원을 마쳤다.

 

1월 1일날 응급실행에 수술까지하고 보니 올해는 참 거하게 시작하는가 싶기도 했지만 입원 당일날 수술을 할 수 있었던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가 배정되지 않아 2-3일간 진통제로 버티다가 뒤늦게 수술하거나 사비를내고 개인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찾아보니 보험이 없으면 호주에서 맹장수술은 6,000불정도 한다고 한다, 거기다 병실 사용료, 전문의 상담료, CT촬영, 기타 처치와 주사 등등하면 아마도 총 비용은 만불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처치는 공립병원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메디케어에서 대부분 커버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나 일정부분 개인이 지불해야되는 비용이 있다면 관련 청구서가 날라오지 않을까 싶다.

 

퇴원후 

 

퇴근후 집에서 병가내고 쉬는데 항생제가 독해서 그런지 아침에 약을 먹고나면 다시 침대에 누워 쉬어야 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오늘이 퇴원후 5일째되느 날인데 퇴원후 처음으로 데스크에 앉아서 컴퓨터를 쓰고 있다. 아침에 항생제를 먹었지만 좀 어지러운것 빼고는 컨디션도 괜찮은 편이다. 주말까지 쉬고나면 담주부턴 일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지 싶다. 재택근무가 가능해서 다행이다. 

 

 

호주에서 2번째 입원인데 매번 느끼지만 호주 회사다닐때 아프면 엄청 배려를 많이 해준다. 그냥 내가 운이 좋은건가 싶기도 하지만 영연방 문화가 그런것 같다. 회사일 신경쓰지 않고 충분히 병가를 쓰도록 해주고, 사무실 급하게 복귀할 필요 없이 재택근무 하면서 서서히 일에 복귀하도록 해주고, 어제는 회사에서 과일바구니도 보내줬다. 

 

다시한번 건강이 최고. 하지만 어떤 사건사고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힘들때는 그저 조금은 미련하게 잘 될거라고 만 믿고 할수있는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지싶다. 

 

PS. 회복경과

첫 일주일은 수술자리도 여전히 신경쓰일만큼 아프고 독한 항생제 덕분인지 몸이 너무 힘들어 많은 시간을 침대에서 보냄. 

2주차가 되면서 몸의 기력이 살아는 것을 느낌. 재택근무로 일을 시작했고 부작용은 수술자리는 거의 안아프지만 무리한 동작(배에 힘이 들어가는 무거운것 들기 등)만 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에는 무리가 없음. 운전도 가능. 하지만 식사는 여전히 소화가 잘되는 것 중심으로 유지. 커피도 먹기시작. 

3주차부터는 거의 정상으로 회복. 식사도 빵, 밀가루 음식, 매운 음식 가리지 않고 먹고 수술자리는 배에 큰 힘을 가하거니 뒤틀지 않는이상 아주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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